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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야맹조(夜盲鳥) / 야명조(夜鳴鳥) / 할단(鶡鴠) 이라는 새.20231111.

 
                             



설산 히말라야에 야맹조(夜盲鳥) / 야명조(夜鳴鳥) / 할단(鶡鴠) 이라는 새가 있다고 한다.
이름 그대로 밤만 되면 운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은 모양이다. 
이 새가 밤마다 우는 까닭은 집이 없어 추워서 그렇다는 것이다. 
참새보다 작은 이 새는 밤이 되면 견디기 어려운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우는 소리가 사람이 듣기에는 “내일은 꼭 집을 지어야지”라는 말로 들린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날 해가 뜨면 따뜻한 곳을 찾아 밤새 추위에 떨었던 몸을 녹이며 전날 밤의 일은 까맣게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꾸벅꾸벅 졸다가 밤이 되면 둥지가 없어 잠자리를 구걸하다 구박을 받는다고 한다. 그 때마다 낮의 일을 후회하고 밤이면 “내일은 집을 지어야지, 내일은 집을 지어야지” 구슬프게 울며 산다고 한다.

내 안의 야맹조(夜盲鳥)에게

히말라야 설산 어딘가에 ‘야맹조(夜盲鳥)’ 혹은 ‘야명조(夜鳴鳥)’라 불리는 새가 산다고 합니다. ‘할단(鶡鴠)’이라고도 불리는 이 참새보다 작은 새는, 이름처럼 밤이 되면 칼날 같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구슬피 운다고 합니다. 그 울음소리는 사람의 귀에 마치 “내일은 꼭 집을 지어야지” 하는 처절한 약속처럼 들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튿날, 따스한 햇살이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면 새는 밤새의 고통을 까맣게 잊습니다. 안일한 햇살의 달콤함에 취해 노래하고 졸다가, 정작 자신의 집을 짓는 일은 또다시 미루고 맙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온 밤, 둥지 없이 추위에 떨며 어제의 나태를 후회하고는 다시 “내일은 꼭 집을 지어야지”라며 온몸으로 운다고 합니다.

설산 속 그 작은 새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귓가에 맴도는 이유는, 제 삶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 제게도 수많은 ‘밤’이 있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실의 막막함이라는 추위 속에서, 저는 간절히 다짐하곤 했습니다. ‘내일은 달라져야지. 더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머릿속에는 항상 더 나은 삶의 설계도가 그려져 있었고, 그 집을 짓기 위한 계획들은 웅장하고 완벽했습니다. 그 밤의 다짐들은 너무나도 진실하여, 동이 트면 정말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도 어김없이 ‘낮’은 찾아왔습니다. 당장의 작은 즐거움과 일상의 분주함이라는 햇살은 지난밤의 냉혹했던 추위와 다짐을 쉽게 잊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일을 다 미루며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삶을 꾸리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고, 나름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제 영혼의 집을 짓는,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일들은 늘 뒤로 미뤄졌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나면,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습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수많은 ‘내일’들이 모여 오늘의 제가 되었습니다. 그 시간들 속에 지어지지 못한 집의 잔해들이 후회라는 이름으로 가슴 한편에 서늘하게 쌓여 있습니다. 왜 그때 조금 더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왜 그 햇살의 따스함이 영원할 것이라 착각했을까. 야맹조의 울음소리는 바로 제 마음속에서 수십 년간 울려 퍼지던 후회의 메아리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 새를 원망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또한 제 모습의 일부였음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내일’이라는 막연한 약속 뒤에 숨는 대신, ‘오늘’이라는 햇살 아래에서 작은 나뭇가지 하나라도 물어오려 합니다. 완벽한 설계도가 없으면 어떤가요. 조금 비뚤고 엉성해도, 비바람을 막아줄 나의 첫 벽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안의 야맹조는 여전히 밤이 오면 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그 울음은 절망의 노래가 아닌, 더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한 다짐의 노래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수많은 밤을 추위에 떨었던 제 자신을 위한 진정한 위로이자, 남은 날들을 위한 가장 진실한 약 '속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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