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시(漢詩) : 추야고향(秋夜故鄕 : 가을밤 옛 고향).20251010.
추야고향 (秋夜故鄕)
(가을밤 옛 고향) - 瑞熙尹
夕陽漸墜野路長 (석양점추야로장)
저녁 햇살 서서히 지고 들길은 길어라
炊煙漠漠入襟香 (취연막막입금향)
밥 짓는 연기 아득히 옷깃에 스미는 향이여
寒風孤客思舊情 (한풍고객사구정)
찬 바람 속 외로운 나그네 옛 정을 생각하니
星點初懸故里傍 (성점초현고리방)
첫 별이 고향 마을 곁에 비로소 걸렸네.
저녁 연기, 아련한 기억의 냄새와 삶의 묵상
해 저무는 논둑길, 발길마다 마른 풀잎이 바스락거립니다. 차가운 초가을의 공기가 하루의 고단함을 실어 지평선 너머로 보낼 때, 저만치 초가집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그 연기는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잊고 지낸 옛 그림자를 불러오는 따스한 온기이자, 세상 가장 다정한 위로였습니다.
아궁이의 장작 타는 소리 대신, 매콤하고도 구수한 '저녁의 냄새'가 허기진 마음을 먼저 채웁니다. 붉던 하늘이 말없이 보랏빛으로 잠기고 외로운 첫 별이 눈을 뜰 때,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 아련한 냄새 하나에, 제 마음은 아득한 기억 속 고향집 마루에 가 닿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길이 바삐 움직이던 부엌에서 풍기던 된장찌개의 구수함, 갓 지은 밥의 달콤한 김 냄새,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 안던 따뜻한 온기. 그 모든 것이 저녁 연기 속에 피어올라 제 코끝을 간지럽히고, 잊었던 감정의 샘을 다시금 솟아나게 합니다.
그리움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위로와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감정입니다. 특히 이 쓸쓸한 계절의 초입, 저녁 연기는 우리에게 잊고 지냈던 소박한 행복과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화려하고 번잡한 도시의 불빛 속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고요하고 깊은 성찰의 시간을 선물합니다.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은, 문득 삶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질문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바쁘게 살아가는가?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그 답은 저 굴뚝 연기처럼 소박하고, 어머니의 밥상처럼 따뜻한 곳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그 연기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오늘 저녁 밥상에 오를 반찬에 대한 기대, 혹은 다음 날 친구들과의 놀이에 대한 설렘 같은 소박한 희망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어른이 된 저는 그 연기 속에서 더 깊은 의미를 찾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잠들어 있는 원형적인 기억, 즉 '고향'과 '안식'에 대한 갈망일 것입니다. 빠르고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이러한 본질적인 갈망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해 질 녘 연기 한 줄기는 잠시 멈춰 서서 우리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합니다.
붉던 노을이 보랏빛으로, 그리고 이내 깊은 남색으로 변해가는 하늘 아래, 첫 별 하나가 외로이 빛을 더합니다. 그 별은 마치 멀리 떠나온 이에게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처럼 반짝입니다. 저녁 연기가 땅 위의 삶을 감싸 안는 동안, 별은 하늘에서 고요히 세상을 비춥니다. 이 지상과 천상의 조화 속에서, 저는 삶의 덧없음과 동시에 영원성을 느낍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지지만, 기억과 사랑, 그리고 그리움은 굴뚝 연기처럼 끊임없이 피어올라 우리를 감싸 안습니다.
이 길 위에 서서, 저는 비로소 온전히 저 자신과 마주합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따스함을 전하는 그 연기 냄새에, 잊었던 옛 그림자를 넘어 미래를 향한 작은 용기까지 발견합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얻는 힘으로 다시금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 저녁 연기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아우르는 깊고도 따뜻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렇게 초가을 저녁, 저는 저녁 연기 속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잔잔한 위로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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