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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요리, 이야기 : 상처부위.20251020.


글] 요리, 이야기 : 상처부위.20251020.

필자의 직업은 요리사이다. 조금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현재 필자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메인 잡(Main Job)인 셈이다.

요리사의 삶이란 상처와 '절친'이 되는 과정이다. 필자의 손과 팔은 지난 세월의 훈장인지 반성문인지 모를 흉터들로 빼곡하다. 뜨거운 냄비에 화들짝 놀라 얻은 '덴 자국', 칼과 물아일체가 되려다 실패한 '베인 흉터', 심지어 무거운 조리도구와 자유낙하 실험을 하다 생긴 멍자국도 있다.

주방은 전쟁터요, 동선은 생명줄이다. 하지만 그 생명줄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니, 때로는 건물 구조물이나 뜨거운 장비와 격렬한 포옹을 나누며 예상치 못한 부상을 획득하기도 한다. 불과 칼을 다루는 이 거룩한 노동의 이면에는, 이처럼 짜릿한(?) 상처들이 늘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어디 요리사만 그럴까? 우리는 모두 일상을 살아가며 크고 작은 상처를 수집한다. 꼭 필자처럼 불쇼를 하지 않더라도, 평화롭게 길을 걷다 보도블록과 싸우거나 고작 A4용지에 베이는 등, 삶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우리에게 '인증'을 남긴다.

그런데 필자가 오늘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상처 그 자체가 아니다. 바로 그 '상처의 위치'에 대한 아주 희한하고도 기묘한 미스터리다.

여러분도 그런 적 없으신가? 평소엔 존재감 0에 수렴하던, 우리 몸에서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던 바로 그 부위. 도무지 다른 물체와 만날 일(Contact)이 없을 것 같은 엉뚱한 그곳에 꼭 상처가 생기는 이상한 일 말이다.

상처를 발견하는 순간, 깊은 현자타임과 함께 의구심이 몰려온다.

"아니, 왜 하필 여기에?" "내가 이 부위를 쓸 일이 뭐가 있다고?"

평소 많은 활동량(Activity)을 담당하지도 않고, 어딘가에 부딪힐 확률도 로또 당첨보다 낮아 보이는 그런 부위. 하지만 기가 막히게도, 일단 그곳에 상처가 생기고 나면 그때부터 마법이 시작된다.

그 '중요하지 않던' 부위는 이제 세상 모든 것과 마찰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스치는 옷깃에도 소스라치게 따끔거리고, 책상 모서리에 정확하게 부딪히며 잦은 고통을 유발한다. 마치 "나 여기 있거든! 까먹지 마!"라고 온몸으로 시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주방에서 칼질한 세월만큼이나 나이테가 쌓이면서 필자는 문득 깨달은 점이 있었다.

필자의 몸 어디에도 '더 많이 쓰이는' 부분과 '덜 쓰이는' 부분이 없다는 진리였다. 필자의 몸은 생각지도 못한 모든 곳에서, 미처 인지하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골고루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몰랐던 그 부위의 소중한 쓰임새를, 필자는 하필 그 부위가 상처를 입어 '아야!' 소리를 낼 때 비로소 알아차렸던 것이다.

"왜 이런 부위에 상처가 생겼지?"라는 저 바보 같은 질문은, 결국 필자 스스로 몸의 소중한 부분들을 무시하고 폄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 녀석도 묵묵히 제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멤버였는데도 말이다.

오늘도 나는 상처를 입는다. (뭐, 새삼스럽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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